흑산도 섬 소년 세계적인 과학자 되다
포스텍 생명과학과 황철상 교수, 결정적 분해 신호 밝혀 내
[산업일보 이강은 기자] 세포 내 단백질 분해신호를 규명,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11월 수상자로 선정된 포스텍 생명과학과 황철상 교수가 노화나 암, 퇴행성 신경질환, 감염 및 자가 면역질환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.
세포 내 단백질의 운명을 결정짓는 단백질 분해신호를 규명함으로써 단백질 분해 이상으로 발생하는 한 업적을 인정받은 황 교수는 대다수의 단백질들에 적용될 수 있는 결정적 분해신호를 밝혀 생명과학 분야 권위지인 셀(Cell)지에 관련 논문을 2014년 1월 발표했다.
생명체는 각종 생명현상을 담당하는 단백질의 수명이 다하거나 손상됐을 경우 유비퀴틴-프로테아좀 시스템을 통해 단백질을 분해함으로써 세포 내 단백질의 항상성을 유지한다.
기존 연구를 통해 단백질의 한쪽 끝 N-말단 아미노 그룹이 아세틸화되면 분해신호로 작용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지만 아세틸화 되지 않는 N-말단 아미노 그룹이 단백질 분해를 촉발시키는지는 규명되지 않았다.
이번 연구를 통해 단백질 분해 이상으로 발생하는 노화나 각종 암, 면역질환 등을 이해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.
황 교수는 단백질 N-말단의 아세틸기가 단백질 분해신호로 작용한다는 것을 2010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하는 등 단백질 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.
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했던가? 흑산도 출신 섬 소년을 오늘의 세계적인 과학자로 성장시킨 반석을 마련해 준 이는 바로 멘토였다.
황 교수가 세포 내 단백질 분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캘리포니아공대 알렉산더 발샤브스키(Alexander Varshavsky)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을 때다. 지난 30년 동안 지도교수가 주장해 왔던 이론과 상반된 연구결과가 나왔다.
“나는 지금까지의 내 이론과 결혼한 적이 없네! 참으로 흥미로운 연구일세! 자네 실험결과를 믿고 끝까지 연구하게”라고 발샤브스키 교수는 조언했다.
2010년 황 교수가 N-말단 아세틸화 단백질 분해신호와 경로를 처음으로 규명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기뻐해 준 사람도 발샤브스키 교수였다. “모든 과학자들은 학문적 인생을 바꿀 세 번의 발견을 경험하게 된다고 생각하네. 바로 자네가 발견한 단백질 분해신호가 나에게 그 세 번째인 것 같네” 뭉클한 감동이 서리는 대목이다.
황 교수는 N-말단 메티오닌이 단백질 운명을 결정하는 신호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발견했다.
“세포 내 단백질은 메티오닌을 포함한 약 스무 종류의 아미노산들로 구성됩니다. 리보솜에서 유전정보에 따라 아미노산들이 펩티드 결합한 것이 단백질입니다. 대부분의 단백질은 유전자 코드 때문에 항상 N-말단이 메티오닌부터 합성되기 시작합니다. 이처럼 N-말단 메티오닌은 단백질 합성 개시신호인 것은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. 여기서 나아가 세포 내 단백질의 운명을 결정짓는 분해신호로도 작용한다는 것을 처음 알아낸 것입니다”
단백질 분해신호를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?
“우리 세포의 약 백억 개 단백질 대부분은 필요에 따라 생성과 분해를 반복합니다. 수명이 다하거나 손상된 단백질이 분해되지 않고 축적되거나 응집되면 퇴행성 신경질환이나 암, 감염 및 자가면역 질환 등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.”
실제 노화가 진행되는 동안 단백질 분해 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해로운 단백질이 세포 내에 축적되거나, 필요한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분해되면 각종 성인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.
때문에 황 교수가 단백질 분해신호와 이를 인식하는 분해경로를 규명함에 따라 단백질 분해 이상으로 발병하는 다양한 질환에 대한 예방이나 치료를 위한 연구에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. N-말단 메티오닌이 단백질 합성과 분해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신호이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거나 활성화하는 물질을 찾는 것이 새로운 신약 개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.
그러면 황 교수가 이러한 연구에 매달리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?
“관상가들은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특징이니 표식을 보고서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언제 죽을 지 예측한다고 합니다. 이와 마찬가지로 세포 내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들도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어떤 신호를 자체 내에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” 과학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호기심과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.
황 교수는 날마다 거의 서너 시간 밖에 자지 않고 늘 실험실에서 사색하고 연구하는 발샤브스키 교수로부터 과학자의 자세와 열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.
“창의적인 과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멘토와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. 또 유행만을 따라가지 않고 미래 연구분야를 개척하겠다는 열정으로 각자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매진했으면 합니다”
이강은 기자 vitamin@daara.co.kr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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